90兆 퍼붓는 '실리콘 재팬'…반도체 부활에 국가 명운 걸었다

입력 2024-02-25 18:29   수정 2024-03-04 16:23


1988년 일본 반도체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3%였다. NEC 도시바 히타치제작소가 1~3위를 휩쓴 것을 비롯해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6곳이 일본 회사였다. 일본 반도체 기업의 생산공장이 몰린 규슈는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렸다.

2021년 일본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까지 떨어졌다. 일본의 반도체 전략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은 이듬해 “이대로라면 2030년 일본의 반도체 점유율은 거의 ‘제로(0)’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랬던 일본 반도체산업이 대만 TSMC 공장 유치를 계기로 전환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년 새 세계 1~3위 반도체 기업 유치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은 지난 24일 구마모토현 기쿠요초에서 열린 TSMC 구마모토 제1공장 개소식에서 “일본에서 처음 12~28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게 됨에 따라 반도체산업의 빠진 조각(미싱 피스)을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반도체업계에서 양산할 수 있는 최신 공정은 40㎚ 수준이다.

사이토 경제산업상의 말대로 불과 2년 새 일본은 세계 1~3위 반도체 기업인 TSMC, 삼성전자, 인텔의 생산 공장과 연구개발(R&D) 거점을 모두 자국에 유치했다.

구마모토 제1공장은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 이은 TSMC의 두 번째 해외 생산 거점이다. 2022년 4월 착공해 작년 12월 건물을 완성했다. 당초 4~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된 공사 기간을 7000여 명의 인력이 24시간 3교대로 일하며 20개월로 단축했다. 대만 주재원 약 400명, 소니 반도체 파견 직원 200명을 비롯해 총 1700명이 근무한다. 제1공장 투자비 1조3000억엔(약 11조5092억원) 가운데 4760억엔을 일본 정부가 지원했다.

TSMC는 올해 말에는 제2공장을 착공해 2027년 말부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TSMC는 “제1, 2공장이 모두 가동하면 구마모토는 범용제품부터 생성형 인공지능(AI) 첨단제품까지 생산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TSMC는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제3공장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를 기회로
일본이 경제적인 절박함으로 추진한 반도체산업 부활은 미·중 갈등 수혜까지 보며 순풍을 만났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반도체산업을 살리기 위해 2030년까지 반도체 관련 매출을 2021년의 세 배인 15조엔(약 133조원)으로 늘린다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했다. 일본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새로 짓는 기업에 최대 절반까지 건설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내걸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불러들였다.

특히 TSMC의 일본 진출은 주요 반도체 기업이 일본에 생산공장을 신설 또는 증설하는 기폭제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2~2029년 일본 내 반도체 공장 투자액이 총 9조엔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중 패권경쟁은 반도체산업의 부활이 절실한 일본에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미국은 1986년 미·일반도체협정을 체결해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고사시킨 나라다. 중국과의 기술경쟁이 첨예해지자 이번에는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면서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살리려 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와 기업이 미국 IBM의 기술 지원을 받아 라피더스라는 합작 반도체 회사를 설립해 2027년까지 2㎚급 최첨단 반도체를 국산화한다는 목표다.

일각에서는 노동력 확보 등 일본 반도체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고 지적했다. 산케이신문은 “TSMC 2공장까지 가동하면 규슈에서 반도체 관련 인재가 향후 10년 동안 연간 1000명 정도 부족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고 전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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